"개기일식은 ‘왜’ 전력난으로 이어질까…폭염이 끌어올린 전력수요"
2026년 8월, 유럽이 ‘개기일식’으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대낮에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은 아이슬란드를 거쳐 스페인 북부에서 관측될 예정입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유럽 상당 지역에서도 부분일식을 볼 수 있습니다.
개기일식은 천문학적으로 보기 드문 장관입니다. 살면서 개기일식을 한 번 보기 힘들 정도이니, 보통 개기일식이 예정되면 관측할 수 있는 지역에선 기대감이 커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식이 관측되는 유럽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태양이 사라지면 태양광 발전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죠. 태양광 발전이 사라지는 건 일시적으로 전력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일식이 절정에 이를 때 유럽 전체에서 태양광 발전량이 약 10GW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영국에서만 최대 1.3GW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각국 송전망 운영기관이 일식에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죠.
보통 원자로 1기에서 1GW의 전력을 생산합니다. 즉, 10GW 규모는 원자로 10기에 해당하죠. 일식은 불과 몇 시간에 걸쳐 짧게 진행되지만, 이 짧은 시간에 원자로 10기에 해당하는 전력 공급이 차질을 빚게 됩니다.
"개기일식은 ‘왜’ 전력 공급 비상일까"
앞서 유럽은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왔습니다. 태양광 발전 비중 역시 높죠. 태양광 발전의 단점은 바로 ‘변동성’입니다. 아침에 해가 뜨면서 발전량이 증가하고 정오를 전후해 정점을 찍은 뒤 저녁이 되면서 감소하죠.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전력망 운영기관도 이를 예상하고 다른 발전원의 출력을 조절합니다.
하지만 개기일식은 조금 다릅니다. 일식이 시작되면 넓은 지역에서 동시에 일사량이 줄어들죠. 태양광 발전량도 빠르게 감소합니다. 달이 태양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태양광 발전량이 이번에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죠. ‘출력 감소 → 최저점 → 출력 급회복’이라는 변화가 짧은 시간 안에 발생하는 것이죠.
전력은 생산과 소비가 실시간으로 일치해야 합니다. 태양광 발전량이 갑자기 5GW 감소하면 다른 발전원이나 저장장치 등이 5GW를 채워야 합니다. 반대로 태양광 발전량이 빠르게 돌아오면 그만큼 다른 발전원의 출력을 다시 줄여야 합니다. 이를 전력업계에서는 ‘램핑(ramping)’ 문제라고 부릅니다.

유럽은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2015년 3월 20일 유럽에서 대규모 일식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유럽 송전망 운영기관들이 대응해야 했던 태양광 발전량의 감소와 재유입 규모는 약 3만5000MW, 즉 35GW에 달했습니다.
유럽 전력망 운영기관들이 사전에 일식의 시간과 태양광 발전량 변화를 계산하고 예비 발전력과 전력거래 등을 준비하면서, 결과적으로 대규모 정전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그동안 유럽의 태양광 발전설비는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태양광이 전력시스템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달라진 것이죠. 게다가 개기일식 시점이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이라는 점도 큰 변수입니다.
"폭염이 끌어올린 ‘전력 수요’"
올해 여름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7월 평균기온은 24.9도를 기록했습니다. 1900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더운 7월입니다. 2003년 8월 기록했던 24.8도마저 넘어섰습니다.
이탈리아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8월 들어 이탈리아가 기온을 관측하는 주요 27개 도시 전체에 최고 단계인 적색 폭염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41.2도, 슬로바키아에서는 42.2도까지 기온이 상승하면서 각각 관측 사상 최고기온을 기록했죠.
폭염은 자연스럽게 전력수요를 끌어올립니다. 에어컨 때문입니다. 실제 수치도 이를 보여줍니다.

지난 6월 독일의 하루 전력소비량은 11일 1267GWh에서 폭염이 심해진 25일 1396GWh로 증가했습니다. 불과 2주 사이 약 10.2% 늘어났죠. 프랑스는 변화 폭이 더욱 컸습니다. 같은 기간 하루 전력소비가 1048GWh에서 1255GWh로 증가했습니다. 증가율로 계산하면 약 19.8%입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도 같은 기간 전력수요가 증가했습니다.
기온과 전력수요 사이의 관계도 비교적 뚜렷합니다. 프랑스 송전망 운영사 RTE에 따르면 폭염 기간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프랑스의 전력수요가 시간대에 따라 약 0.7~1GW 증가합니다. 지난 6월 폭염 당시 평년 수준의 기온과 비교해 냉방으로 늘어난 전력수요가 하루 평균 약 10~14GW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즉 이번 개기일식은 평상시 전력수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크게 증가한 상태에서 발생하죠. ‘폭염 → 냉방수요 증가 → 전력수요 상승’이 첫 번째 충격이라면 ‘개기일식 → 태양광 발전량 급감’은 두 번째 충격인 셈입니다.
"이번 개기일식은 유럽 전력망 ‘예고된 테스트’"
물론 이번 개기일식 때문에 유럽에서 대규모 블랙아웃이 발생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기우 일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일식은 전력망 운영자의 입장에서 대응하기 쉬운 위험에 속하죠. 언제 일어날지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역별로 태양이 얼마나 가려지고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도 사전에 계산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태풍이나 발전소 고장 같은 변수가 발생시점과 규모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편이죠.
전력망 운영기관은 이 시간을 기준으로 예비 발전력을 확보하고 발전소 출력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ESS에 저장한 전력을 공급하거나 국가 간 송전망을 통해 부족한 전력을 가져오는 방법도 있죠.
EU 집행위원회도 현재 각국 송전망 운영기관이 이번 일식에 대비하고 있지만 전력 소비에 미칠 영향 자체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식이 태양광 발전의 최대 출력 시간인 정오가 아니라 늦은 오후에 발생하기 때문이죠.
이번 일식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요. 전력망의 환경이 11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 전력시스템의 핵심 질문은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전력수요가 가장 높은 시간에 공급할 발전소가 충분한지가 중요했죠.
그러나 태양광과 풍력 등 날씨에 따라 출력이 달라지는 발전원이 늘어나면서 질문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발전설비가 ‘얼마나 많은가’뿐 아니라 ‘얼마나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가’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수 GW의 발전량이 짧은 시간에 사라지면 그만큼 다른 발전원이 빠르게 올라와야 합니다. 다시 수 GW가 돌아오면 다른 발전원의 출력을 빠르게 낮춰야 하죠.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원자력발전, 가스발전, 국가 간 송전망, 수요반응 등 전력시스템의 유연성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기에 폭염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올해 프랑스에서는 2주 사이 하루 전력수요가 약 20% 증가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최대전력수요가 지난해 최고치보다 4.6% 높아졌죠. 폭염과 냉방수요 증가, 전기차와 데이터센터, 산업 전기화 등으로 전력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8월 12일 유럽에서 벌어질 일은 단순한 천문현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태양이 잠시 사라지는 몇 시간 동안 유럽은 미래 전력망이 요구하는 조건을 미리 경험하게 되죠.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발전설비가 아닙니다. 수요가 급증하고 공급이 빠르게 변하는 순간에도 발전과 소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전력망입니다. 이번 개기일식은 그 능력을 확인하는, 정확히 예고된 ‘스트레스 테스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범수 세계일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