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첫 단추 ‘긍정적’
누진제·난방비 부담, 체감효과 없으면 한계
![금한승 환경부 차관이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기자실에서 2026년도 환경부 예산 및 기금 편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electimes.com/news/photo/202509/359676_567940_3341.png)
히트펌프가 세계 난방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국내도 탈탄소 전환 과정에서 건물 부문의 주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2016년 EU 열 전략 발표 이후, 히트펌프를 산업·건물 부문 열에너지 소비 탈탄소화의 핵심 과제로 부각했다. 유럽히트펌프협회(EHPA)에 따르면 2023년 유럽에서는 약 302만대의 히트펌프가 판매돼 누적 설치량이 2396만대에 달했다. 전년 대비 13.7% 증가한 수치다.
특히 영국은 2024년 한 해 동안 9만8469대가 팔리며 전년 대비 63% 성장, ‘히트펌프 붐’을 입증했다. 각국 정부가 설치비의 30~70%를 보조하거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정책적 지원을 이어간 덕분이다.
한국도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최근 국회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에서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히트펌프를 2035년 NDC 감축 수단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또한 환경부는 2026년 예산안에 처음으로 공기열 히트펌프 보급사업을 반영했다. 총 90억원 규모로 가구당 560만원씩 1600가구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예산은 저녹스 보일러 지원을 폐지해 화석연료 보조금을 줄이고 전기 기반 난방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공기열 히트펌프는 외부 공기의 열을 흡수해 난방과 온수에 활용하는 전기 설비다. 같은 열량을 생산할 때 전기저항 난방보다 효율이 높고, 가스·석유 보일러에 비해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이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국내에서 보급이 더뎠던 이유는 뚜렷하다. 외기온도에 따라 성능이 크게 달라지고, 무엇보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상 경제성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난방용 히트펌프 보급 통계조차 따로 집계되지 않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번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정부가 화석연료 보일러 보조를 끊고 난방 전기화로 전환한 것은 중요한 구조조정”이라며 “정책적 전환으로 높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설치비 약 1000만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금액을 보조하는 이번 지원은 해외와 비교해도 경쟁력 있는 수준이다.
다만 보급 확대에는 분명한 과제도 있다. 현행 누진제 전기요금 체계에서는 4인 가구 기준 도시가스 보일러보다 운영비가 더 들 수 있다.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가스보일러는 연간 약 70만원이 소요되지만, 히트펌프는 약 85만원으로 비용 부담이 크다. 겨울철 성능계수(COP)가 3 이상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는다면 소비자 체감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이면서 겨울이 비교적 온화한 전남·제주 지역에서 우선 보급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택 조건 역시 관건이다. 남부 지방이라도 단열이 열악한 노후 주택에 설치하면 난방비가 급증할 수 있다.
임현지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부연구위원은 “단열이 안 된 주택에 무분별하게 설치하면 성능이 낮다는 인식만 확산될 수 있다”며 “심사 과정에서 단열 개선 정도와 태양광 설치 여부 등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보급 확대를 위해 ▲히트펌프 전용 요금제 도입 ▲보급 대상 심사 기준 마련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과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국토부의 그린리모델링과 같은 건물 단열 개선 사업과 패키지로 지원하면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는 제언이다. 독일 등 유럽은 이미 단열 보강과 난방 설비 교체를 동시에 지원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오세신 박사는 “히트펌프 보급 활성화를 알리는 신호탄임은 분명하다. 한시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재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해 지원 규모를 늘려가야 한다”라며 “다만 조급하게 추진되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소비자의 입장에서 기술적·경제적 조건을 충분히 검토한 뒤 체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